분류 전체보기43 『남한산성』 리뷰 - 화친이냐 척화냐, 얼어붙은 산성 안의 마흔일곱 날 칸의 군대에 포위된 임금과 신하들의 겨울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대군의 침공을 피해 인조와 조정 대신들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마흔일곱 날 동안 고립되었던 실제 역사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전쟁 영화임에도 대규모 전투 장면보다는 산성 안에서 벌어지는 말과 말의 대결, 즉 두 신하의 팽팽한 논쟁에 서사의 무게중심을 둔다. 이병헌이 연기한 이조판서 최명길은 청과 화친을 맺어서라도 나라와 백성의 목숨을 보전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펼치고, 김윤석이 연기한 예조판서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느니 명분과 절의를 지키며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것이 옳다는 척화론을 주장한다. 두 사람의 대립은 단순한 선악 구도로 그려지지 않는다. 최명길의 .. 2026. 9. 11. 『벌새』 리뷰 - 1994년, 은희의 방문을 두드리던 손 현관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던 그날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벌새는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중학교 2학년 은희의 일 년을 따라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은희는 자기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부르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고, 잠시 후에야 그것이 옆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짧은 오프닝은 은희가 자신이 속한 가족 안에서 얼마나 쉽게 잊히고 지나쳐지는 존재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은희의 집은 서울 대치동에서 떡집을 운영하는데, 아버지는 장남인 대훈에게만 기대를 걸고 은희와 언니 수희에게는 무심하거나 때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학교에서는 후배와 연애를 하고, 남자친구와 만나며, 절친한 친구와는 사소한 오해로 갈등을 겪는 등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사춘기 소녀.. 2026. 9. 11. 『우리들』 리뷰 - 피구공이 튕겨 나가던 순간 무너진 열한 살의 세계 선이 마지막 순번까지 남겨지던 체육 시간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선이 체육 시간 피구 경기에서 아이들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남겨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짧은 장면 하나만으로 영화는 선이 반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대사 한마디 없이 설명해낸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선은 전학생 지아를 만나게 되고 두 아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지아는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집에 맡겨져 지내는 처지이지만 선 앞에서는 유복한 집 아이인 척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소소한 거짓말과 감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라면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들의 관계에서는 신뢰를 뒤흔드는 균열의 씨앗이 된다. 방학 동안 봉숭아물을 들이고 손을 잡고 다니던 두 사람의 우정은 개학과 동시에.. 2026. 9. 10. 『리틀 포레스트』 리뷰 - 실패한 하루를 씻어내는 사계절의 부엌 2026. 9. 10. 『버닝』 리뷰 - 해미가 사라진 자리, 종수가 좇은 그레이트 헝거 해미가 없이 귤을 까먹는 법, 있다는 걸 잊으면 돼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삼아, 소설가를 꿈꾸는 청년 종수와 어릴 적 이웃이었던 해미, 그리고 해미가 여행지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부유한 남자 벤 사이의 관계를 따라가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유아인이 연기한 종수는 아버지의 소송 문제로 파주의 낡은 집에 홀로 머물며 막연한 미래를 살아가던 중, 우연히 재회한 해미와 가까워지고 그가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며 맡긴 고양이를 돌보게 된다. 전종서가 연기한 해미는 여행에서 돌아오며 벤이라는 세련되고 여유로운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하는데, 이 만남을 계기로 세 사람은 묘하게 얽힌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영화 초반, 해미는 종수 앞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귤을 까먹는 팬터마임.. 2026. 9. 10. 『아가씨』 리뷰 - 하녀로 위장한 숙희, 저택의 문턱을 넘다 하녀로 위장한 숙희, 히데코의 방에 들어서다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소매치기 숙희가 사기꾼 백작 후지와라의 계획에 가담해 부유한 상속녀 히데코의 하녀로 위장해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태리가 연기한 숙희는 히데코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고 그의 막대한 재산을 가로채려는 후지와라의 계략에 따라, 히데코의 신뢰를 얻고 그가 후지와라와 결혼하도록 유도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숙희는 히데코를 가까이서 돌보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그에게 진심으로 이끌리게 되고, 이는 애초의 사기극 계획을 뒤흔드는 균열의 시작점이 된다. 김민희가 연기한 히데코는 겉으로는 고아하고 연약한 아가씨처럼 보이지만, 오랜 세월 숙부의 억압적인.. 2026. 9. 9.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