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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리뷰 - 열흘의 자유, 기차에서 스친 낯선 인연 살인죄로 복역 중인 여자, 어머니의 부고로 얻은 특별 휴가『만추』는 살인죄로 복역 중인 여성 혜림이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특별히 열흘간의 귀휴를 허락받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오랜 수감 생활로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혜림은 짧은 자유의 시간을 안고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는데, 그 열차 안에서 우연히 사기 전과가 있는 남자 훈을 만나게 된다. 감시원 없이 홀로 세상에 나온 혜림에게 이 열흘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과 감각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낯설고도 조심스러운 시간이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며 데면데면하게 대하던 두 사람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늦가을 풍경 속에서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훈은 형사에게 쫓기는 처지임에도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 않으며.. 2026. 9. 17.
『오발탄』 리뷰 - "가자"는 외마디에 담긴 전후 서울의 절규 계리사 사무실 서기 철호, 온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다『오발탄』은 한국전쟁 직후 월남한 실향민 가족의 곤궁한 삶을 통해 당대 서울의 참담한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철호는 계리사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하며 박봉으로 온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전쟁 통에 고향을 떠나온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려 밤낮없이 "가자, 가자"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만삭인 아내는 산달이 다가오는데도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틴다. 철호의 남동생 영호는 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상해 군인 출신으로, 정직하게 살아온 형과 달리 사회에 대한 냉소와 분노를 품고 있다가 결국 은행 강도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다. 그는 국가를 위해 몸을 바쳤음에도 정작 사회는 자신과 같은 상이군인을 외면하고 있다.. 2026. 9. 16.
『하녀』 리뷰 - 계단 아래에서 시작된 욕망이 집 전체를 삼키다 음악 교사 동식의 집에 들어온 하녀, 평온하던 중산층 가정이 흔들리다『하녀』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 동식의 가정에 하녀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파국을 그린 작품이다. 동식은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으로, 새로 지은 이층집에서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공장 여공 중 한 명인 조경희가 피아노 레슨을 받다 동식에게 연정을 품고 편지를 보내는 사건이 벌어지자, 동식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지만 이 일로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아 건강을 해치고 만다. 재봉틀 부업으로 살림을 보태며 억척스럽게 가정을 꾸려온 아내는 남편의 성실함만을 믿고 살아왔기에, 이 사건은 그녀에게 자신이 애써 지켜온 세계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는지를 처음으로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동식 역시 여공의 .. 2026. 9. 16.
『마더』 리뷰 -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어머니의 두 얼굴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도준, 살인 용의자로 몰리다『마더』는 작은 소읍에서 약재상을 하며 아들 도준을 홀로 키워온 어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도준은 스물여덟 살이 되었지만 어린아이 같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 어머니는 늘 그의 곁을 맴돌며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려 애쓴다. 어느 날 밤, 마을 여고생 아정이 살해된 채 발견되고, 사건 현장 근처에 도준이 있었다는 목격담과 정황 증거가 겹치면서 그는 순식간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경찰은 도준의 어눌한 말투와 위축된 태도를 죄의식으로 오해하고 별다른 조사 없이 자백을 받아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 한다. 도준은 사건 당일 밤 술에 취해 있었던 데다 아정과 우연히 마주친 기억마저 희미해서, 형사들의 유도 신문에 자신이 정말 죄를 지은 것인지조차 스스로 .. 2026. 9. 16.
『추격자』 리뷰 -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린 삶과 죽음 콜걸 실종 사건을 쫓는 전직 형사, 미행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 되다『추격자』는 서울 미아리 일대에서 출장 안마를 알선하며 살아가는 전직 형사 엄중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하나둘 연락 두절되자 중호는 이들이 팔려나간 것으로 의심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여자 미진을 보낸 손님의 전화번호를 추적한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서 마주친 남자 지영민은 순순히 자신이 여자들을 죽였다고 실토하지만, 정작 경찰은 물증 없이는 그를 구속할 근거가 없다며 우왕좌왕한다. 중호는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이 관리하던 여자를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지영민을 뒤쫓기 시작했을 뿐, 그가 이미 여러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우연히 붙잡은 그의 자백을 듣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호는.. 2026. 9. 15.
『왕의 남자』 리뷰 - 광대의 웃음이 왕의 권력을 뒤흔든 순간 저잣거리 유랑패 장생과 공길, 죽은 기생의 복수극으로 궁에 들다영화 『왕의 남자』는 조선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저잣거리를 떠도는 광대 장생과 공길의 이야기를 그린다. 장생은 자신이 몸담았던 놀이패의 기생이 양반의 노리개로 이용되다 죽음을 맞자 분노하여 한양으로 올라와 새로운 패거리를 꾸린다. 그가 데리고 있는 동료 공길은 여자 역할을 도맡는 남사당패 출신으로, 곱고 섬세한 외모와 몸짓으로 무대 위에서 여인보다 더 여인 같은 존재감을 뿜어낸다. 두 사람은 저잣거리에서 왕과 후궁을 노골적으로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이다 관아에 붙잡히지만, 오히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궁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폭정과 사치로 신하들의 원성을 사고 있던 연산군은 자신을 조롱하는 이 놀이패의 대담함에 흥미를 느끼고, 장생 일행.. 2026. 9. 15.